끝으로, 진정한 것들이 무럭무럭 자라기를
수취인 분명의 편지 💌024
감상자 님께.
드디어 올해의 마지막 편지를 보냅니다. 오랜 시간 제 이야기에 머물러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림엽서를 만들기 시작해서부터 오늘 편지를 쓰기까지 약 2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직장 생활에 지쳐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2021년의 그림 그리기는 올해 김해 봉황동 종이상점 활동까지 이어졌어요.
2021년에는 제가 지금껏 여행을 떠났던 곳 중에서도 여유롭게 머무르고 싶은 곳, 다시 가고 싶은 곳의 사진을 보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 개인적인 활동을 계기로 김해 봉황동 종이상점 W.I.Y.P?와 연이 닿아서 페이퍼리스트로 활동했어요. '큰 풍경과 작은 풍경으로 들려주는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를 기획했고 봉황동을 스쳐가는 여행자들에게 머무르며 여행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았었죠.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도 저는 머무르는 삶을 붙들고 일상을 아름답게 보려는 의식적인 행위를 놓지 않았어요. 그런 삶의 모습을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를 마친 뒤에 보냈던 또 다른 열 편의 이야기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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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동안 몇 편의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우리들의 관계가 많이 돈독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각자에 대해서 잘 모르던 시절도 있지만 이제는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이렇다보니 편지 쓰는 일은 갈 수록 재미있어졌고 어떻게하면 편지를 주고 받는 사람들끼리 더욱 깊이있는 관계를 맺게 될지에 관해서 고민해보게 됐어요. 그러다 문득 편지지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이메일로 편지를 보내지만 앞으로는 손편지를 많이 써보고 싶어요.
이왕 편지지를 만드는 것... 어떤 종이를 쓰면 편지 쓰는 일이 더 즐거워질까요? (감상자 님도 생각나는 종이가 있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해주세요!) 저는 여러 종이를 찾아보다가 대나무 종이를 써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나무 종이는 우리나라에서 생산하지 않아 국내에서 보기 힘든 종이였는데요. 삼원특수지라는 회사에서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더군요.
대나무는 히알루론산이라는 진정 성분이 있어서 약이나 화장품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요. ‘진정’한 의미를 담은 종이도 만들어낼 수 있어요.
대나무로 종이를 만들면 자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됩니다. 대나무는 빨리 자라는 풀이니까요. 뜨거운 지구를 진정시키는 일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지구를 지속 가능하게 보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지구가 오래, 건강하게 보존된다면 우리의 사랑과 우정도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되고 애틋한 마음, 그리고 소란스럽고 어지러운 일을 가라앉힌다는 중의적인 뜻이 담긴 '진정'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대나무 종이를 사용해 〈진정을 담는 대나무 편지지〉를 봉황동 종이상점 W.I.Y.P?와 만들어볼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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