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지금의 모습이 담긴 이야기를 보내 드립니다. 마음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 머물러있는데... 몸만 커버린 어른이의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야 말았습니다. 제게 답장을 보내준 어느 수취인의 말대로 분명 최선을 다해서 산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지 않은 모습이 저의 이야기에서도 드러납니다.
늦은 저녁 시간이지만
책상 앞에 잠시 머물러서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세요.
이번에는 글과 그림뿐만이 아니라 듣기 좋은 노래도 준비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예원 작가가 〈봉황동의 밤 : 밤의 속살은 진한 노란색〉이라는 주제로 큐레이션한 플레이리스트입니다. 예원 작가는 종이상점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료인데요. #필름카메라 #새벽감수성 #음악앨범과 같은 키워드가 떠오르는 사람입니다.
위의 썸네일을 클릭하시면 예원 작가의 유튜브 채널로 이동해 봉황동의 밤이 생각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플레이리스트를 켜두고 있는데요. 읽으면서 듣기에도 좋을 것 같아서 함께 담아 보냅니다.
참고로 스마트폰에서는 제 편지를 읽는 동시에 음악을 듣기 어려울 수 있어요. PC 환경에서 제 편지를 읽을 때 음악을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노래를 재생한 뒤에
아래 편지를 읽어주세요.
지금부터
크고 작은 풍경으로 들려주는
머무름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크고 작은 풍경으로 들려주는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 -두 번째 편지
시급을 버느라 시간을 잃어버린 너에게
오늘도 출근했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다가오는 월급날을 위해서 오늘 하루를 회사에 갈아넣었지. 격무와 실수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생계 때문이야. 다른 이유가 있을까?
살아가고 있어. 그런데 정말 살아가고 있는 게 맞을까? 생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살아간다는 기분은 들지는 않아. 회사에서 떳떳한 사람이고 싶고 기분 좋게 퇴근해서 여유를 즐기고 싶은데. 집에 가서도 업무가 생각나서 마음 편히 쉬지 못해.
우리 회사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현판이 걸려있어.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라는 말쯤으로 여길거야.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했지. 어제 내가 성실히 걷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뛰는걸까?하고서 말이야.
어른이 된 이후로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날이 종종 있어. 특히 입사 이후로 그런 적이 많아. 너는 어떻니? 취업은 너의 오랜 꿈이었잖아. 일은 할만하니? 그동안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너의 모습은 지금 어떻니?
오늘 출근 길에 장미가 피어서 흐드러지던데. 그 사실을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어. 퇴근길에 피어있었던 장미는 당연히 출근하던 순간에도 피어 있었겠지. 그런데 출근길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스쳤기 때문이겠지. 일할 생각으로 가득차버린 머리속에는 장미 한 송이를 담아둘 여유조차 없었나봐.
시급을 벌기위해 발버둥을 치는 동안 일상의 아름다운 광경이 우리를 스쳐가. 되돌아오지 않을 시간과 함께. 매달 월급을 받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나의 삶은 풍요로워지고 있는 것이 맞는 걸까?
너의 하루는 어떻니? 아직 길가의 장미를 또렷이 보지 못한 너에게. 시급을 버느라 시간을 잃어버린 너에게. 오늘 퇴근 후 길에서 잠시 머물다 바라본 장미 한 송이를 편지에 담아 보낸다. 너도 멈춰보렴. 오월의 장미가 피어 있는 담벼락 앞에서.
잘 감상하셨다면 가끔은 답장 한 통 보내주세요. 느낀 바를 솔직하게 말씀해주셔도 좋고 안부도 좋습니다. 어떤 내용이든 당신의 답장은 우리의 우정과 세계 평화에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주 수요일 저녁 아홉 시에도
다른 이야기로 수취인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오늘 보내드린 두 번째 편지에 끝까지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남은 시간 여유롭게 보내세요. 안녕!
아트워크 주제 :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About Stay)
제가 진행한 아트워크의 주제는 크고 작은 풍경으로 들려주는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기술인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를 크고 작은 풍경이 한 묶음인 그림을 통해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종이상점을 중심으로 김해 봉황동의 풍경을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큐레이션 방식 : 수취인 분명의 편지
지금 보내드리는 이 편지는 제 그림을 전시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수취인 분명'. 말 그대로 받는 사람이 분명하다는 뜻인데요. 콘텐츠 채널이 다양한 시대에 제 이야기를 얼마나 많은 분께서 관심있게 봐 주실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메일의 상단에 적힌 수취인에 해당하는 분들만큼이라도 공감하며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