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풍경으로 들려주는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 -세 번째 편지
아지트가 필요한 너에게
지난번 편지는 잘 받았니? 글만 있으면 심심할까봐 그림도 같이 넣어서 보냈어.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그림을 담았어. 그것도 두 장이나. 요즘 그리는 그림들은 죄다 두 장이 한 세트야. 큰 풍경화, 작은 풍경화.
큰 풍경화는 내 발걸음을 머물게 하는 멋진 풍경으로부터 시작되지. '멋지다'라고 해서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하거나 웅장한... 그런 모습은 아니야. 내 주변의 일상적인 것들을 소재로 다뤘을 뿐! 지금까지는 일상을 스치기만 했는데 머물러서 깊이 감상하다 보니 멋진 풍경처럼 보이더라고. 그래서 그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거야.
그리고 그 속에는 유난히 시선이 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을 떼어다가 따로 그려.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태어나는 그림을 '작은 풍경화'라고 부르지. 큰 풍경에서도 특별히 간직하고 싶은 장면이야.
발걸음과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노라면 생각나는 것들이 많아져. 어린 시절에 달리기 경주에서 낙오했다가 벤치에서 머물렀던 기억, 퇴근하다가 장미가 핀 담벼락에서 머물렀던 기억들도 그림을 그리다 떠올린 것들이지. 이미 네게 들려준, 어딘가 정체되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이야.
예전에는 내가 잘났던 이야기만을 말하고 싶었어. 누구보다 떳떳하고 싶었고, 그렇지 않은 상황일지라도 자존심만큼은 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만을 네게 보여주고 싶었지.
그런데 그것이 너와 나 모두에게 피로감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던거야. 듣는 사람이 먼저 지치고 이야기하는 사람조차 언젠가는 지칠만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지어내고 있었어.
그러다가 문득 떠올린 질문 하나가 있었지. '이야기를 하는 의도가 무엇이지?'. 그때부터 피로감을 주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싶어진 거야. 멈추고 싶을 때 멈춰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졌어. 네가 지쳤을 때 멈추고 돌아서서 손잡아 줄만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졌어.
그러다가 머물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됐지. 그러니까... 아지트 같은 사람? 굉장하지는 않아도 빛이 잘 들고 조용한 나만의 아지트 안에서는 여유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잖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또 그런 이야기를 네게 들려주고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