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시겠어요? 늘 푸르기만 할 것 같았던 세상이 울긋불긋한 빛깔로 익어가고 있어요. 농부들은 수확을 기다렸고 우리들은 날이 시원해지기를 바랐죠. 우리가 그토록 희망하던 계절이 성큼 다가왔어요. 저희 집 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감도 붉게 물들어가고 있어요. 아직 완전히 익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익어가는 과정이에요.
오히려 완전히 익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더 신비롭게 느껴져요. 감나무는 이사 왔던 때부터 줄곧 저희 집 마당에 있었는데요. 머무를 줄 몰랐던 과거에는 감이 익어가는 과정 따위... 관심 없었어요.
그런데 올 한 해 창작 활동 과정에서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머무르면서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갖는 일이 습관이 되었어요. 알고보니 열매는 먹기 좋게 익었을 때뿐만이 아니라 무르익는 과정에서도 아름다운 빛을 내뿜고 있더군요.
아래쪽부터 서서히 붉은빛이 오르는 것이 마치 노을 지는 모습 같았어요. 하나의 열매가 내뿜는 색감의 온도차 때문에 열대과일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렇게 열매가 무르익는 과정을 보면서 언젠가는 다 익은 열매의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하는 동시에 무르익는 과정의 신비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런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서 선물 받은 고체 물감을 사용해 종이 위에다가 그림을 그렸어요. 최근에 편지에 열매 그림과 사진을 많이 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다른 형태로 형상화했어요. 노을 지는 하늘 아래 푸른 산봉우리를 그렸어요. 익어가는 감 하나에 담긴 다채로운 색으로 이런 풍경도 연출이 가능하군요!
열매가 무르익은 것처럼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내일을 줄곧 상상하곤 해요. 그런데 그런 날은 단 하루만에 찾아오는 법이 없다고, 어제 저희 집 감나무를 통해서 배웠어요. 인간의 삶은 한 권의 소설책과도 같아서 끝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요. 무르익은 마지막 순간까지 조급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잘 익은 열매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잘 익어가는 것기 중요한 것 같아요. 그동안에는 기다리고 기대하는 일이 계속되겠지만 이렇게 익어가는 과정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