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조금 시원해진 날씨뿐만이 아닐 겁니다. 철 따라 볼 수 있는 꽃이나 과일 중에서도 이맘때 피고 열리는 것들은 모두 가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존재들이에요. 변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때가 되면 본연의 향기와 맛을 낼만큼 성장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산책을 하다보면 그런 것들이 종종 보여요. 이번 주 월요일은 쉬는 날이기도 해서 집 근처에 있는 낮은 산에 올랐는데요. 산 입구에 금목서꽃이 피어있더군요! 저는 금목서를 참 좋아하는데요. 꼭 이맘때 꽃이 피더라고요. 별처럼 반짝이는 작고 노란 꽃들이 촘촘히 피어있는데요. 향이 아주 달콤해요. 그런 향을 꽃 가까이 가서 맡아도 좋은데 이미 짙은 향기가 산 입구 아래 고도가 낮은 곳까지 흘러가서 등산객을 마중하고 있더군요.
참을 수 없는 향기 때문에 꺾고 싶은 마음이 생길(...🤤) 뻔했지만 저는 가지를 꺾지 않고 그림으로 이 순간을 간직하려고 해요. 이번에는 지난번 편지에 썼던 고체물감과 황목 아르쉬지(평량 300g/㎡)를 사용했어요.
지금 피어있는 꽃들도 언젠가는 다 떨어져 향기 내던 시절을 잊고 말겠지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향기를 머금은 채로 머물러달라고 가지를 꺾지는 않았어요. 대신 금목서 아래에서 향기를 기억할 때까지 오랫동안 서서 머물렀어요. 내년 이맘때 또 향기로운 꽃무리로 가득하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스무 편의 편지를 썼는데요. 잘 감상하셨나요? 사실 그리 대단하지는 않은... 아주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이야기일 뿐이에요. 그래도 조그맣게 피어서 짙은 향기를 발하는 금목서처럼 저 역시 작게만 여겨지는 일상을 촘촘히 향기롭게 살아보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편지를 쓰는 일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도 제게는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감상자 님은 어떤 삶이 향기로운 삶이라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