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공원에 갔었어.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거든. 조금 걷다가 그늘진 곳에 돗자리를 펴고 누웠어. 시선이 위를 향하도록 하고서 하늘을 바라봤지. 고요한 하늘 아래에 오직 나무 가지만이 흔들리고 있었어. 나 역시 평소 흔들리며 살아가지만 그때만큼은 평온한 시간을 만끽했지.
그런데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어. 갑자기 일 생각이 떠올라서 월요병이 조금 이르게 찾아왔지 뭐야. 누워서 가만히 있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 '하늘이 참 푸르네~' 같은 감상에만 잠길 수만은 없지. 무의식적으로 지난주에 저지른 실수가 떠오르고 다가오는 주에 해결해야 할 업무가 생각났어. 그런 생각들이 평온했던 내 마음을 흔드는 거야.
휴일을 보내고 다시 출근했어. 회사는 그야말로 진원지니까... 진폭은 말할 것도 없겠지? 콘크리트 벽 사이, 형광등 불빛에 눌릴 채로 일터의 무게를 견디는 나에게 바람이 불어올 일은 없겠지만, 어째서인지 바깥에 있을 때보다 더 흔들리는 것 같아. 2년째 내 자리를 지키는 중이지만 신입사원 때와 다를 것 없이 무언가에 쫓기고 있고 실수하며 가볍게 초라해지지.
어떨 때는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할까? 아니면 그만둬야 할까?'하고서 고민한 적도 있어. 어른이 되면 취직해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
단단한 삶. 그러니까 안정적인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 그런 삶을 꿈꾸던 내게 필요했던 것은 직장과 급여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 그것이 단단한 삶에 필요한 절대적인 동력이라고 여겼거든.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좋은 직장을 다니면서 높은 급여를 받을 기회는 좀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고. 경쟁 사회에서 내 나름대로 목표를 갖고서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도달하기 직전에 지치는 경우가 다반사였지.
대신 지금 나를 견고하게 해주는 것들은 따로 있어. 바로 퇴근, 산책, 사랑이야. 퇴근 후 산책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줘.
큰 풍경_ 봉황대공원
봉황대공원에서 저마다의 속도로 머물러 봅시다. 아이들은 잔디밭 광장에서 뛰어놉니다. 어른들은 산책로를 따라 걷습니다. 벤치에 앉거나 돗자리를 펴서 피크닉을 즐기는 것도 좋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봉황대공원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머무르며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삶을 살아봅시다.
요즘 들어 바깥에서 더 자유로운 감정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아. 회사라는 틀에 몸과 마음을 구겨 넣었던 나를 빼내서 환기시키는 일은 생필품을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되었어.
이전까지는 잔업 수당을 더 많이 받고 싶어서 회사에서 늦게까지 머무르고 싶었는데 그보다는 시간을 버는 일이 소중해졌어. 더 벌어 봐야 어차피 작고 귀여운 내 월급😂그럴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일이 더 좋은 것 같아.
내가 갔던 공원은 봉황동 종이상점 근처에 있는 봉황대공원이야. 그곳에는 잔디밭도 있고 산책코스도 있어. 걷는 사람도 있고 돗자리를 펴고서 소풍을 즐기는 시민도 많은 곳이야.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곳은 연못인데 여름에 핀 물억새는 온통 초록빛이야. 마치 모네가 그린 정원 그림을 보는 것만 같아. 가을에는 갈빛으로 변해서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곳이지. 밑에 붙인 사진은 주말에 봤던 연못 풍경이야.
바람 따라서 정신없이 흔들리는 억새를 보고 있으면 일터에서 흔들리는 내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지. 나도 억새만큼이나 가벼운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돼.
편지를 쓰다가 생각했는데... 요즘 많이 흔들리고 있다는 너보다 내 상태가 더 심각하구나! 누가 누구를 위로한다는 것인지... 아무튼 지난 번에 네가 편지를 보내준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어. 너의 고민이 담긴 편지를 읽으면서 같은 결을 따라 흔들리는 친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제는 외롭지 않아.
너도 흔들릴 때마다 기억하기를 바랄게.
함께 흔들리는 사람이 한 명 더,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을.
또 편지할게.
2022. 6. 15.
작은 풍경_ 억새
억새가 흔들립니다. 바람에 흔들립니다. 억새만 흔들릴까요? 때로는 우리도 흔들립니다. 봉황대공원의 연못에 심어진 억새를 보며 떠올려 봅시다. 우리는 억새 만큼이나 가벼운 존재라는 사실을.
잘 감상하셨다면 가끔은 답장 한 통 보내주세요. 느낀 바를 솔직하게 말씀해주셔도 좋고 안부도 좋습니다. 어떤 내용이든 당신의 답장은 우리의 우정과 세계 평화에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주 수요일 저녁 아홉 시에도
다른 이야기로 수취인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오늘 보내드린 다섯 번째 편지에 끝까지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남은 시간 여유롭게 보내세요. 안녕!
아트워크 주제 :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About Stay)
제가 진행한 아트워크의 주제는 크고 작은 풍경으로 들려주는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기술인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를 크고 작은 풍경이 한 묶음인 그림을 통해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종이상점을 중심으로 김해 봉황동의 풍경을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큐레이션 방식 : 수취인 분명의 편지
지금 보내드리는 이 편지는 제 그림을 전시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수취인 분명'. 말 그대로 받는 사람이 분명하다는 뜻인데요. 콘텐츠 채널이 다양한 시대에 제 이야기를 얼마나 많은 분께서 관심있게 봐 주실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메일의 상단에 적힌 수취인에 해당하는 분들만큼이라도 공감하며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