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치즈 케이크를 사 왔어. 박스 안에 큰 케이크 한 덩이가 담겨 있었지. 아내와 둘이 먹기에는 아주 많은 양이더라고. 한 번에는 다 못 먹었고 그것을 조금씩 잘라서 며칠에 걸쳐 먹고 있어. 매일 퇴근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소확행이 따로 없네!
요즘 내게 행복을 주는 것들은 치즈 케이크 한 조각처럼 작은 것들이야. 케이크뿐만이 아니라 길가에 핀 꽃이나 길냥이 같은 존재들도 좋아하지.
지금보다 작았던 시절에는 오히려 큰 것을 좋아했어. 크리스마스 날 큰 선물을 받고 싶었고, 큰 사람이 되고 싶어서 큰 장래희망을 마음에 품고 살았지. 큰돈을 모으고 큰 집에서 살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 그런데 점점 커 갈수록 큰 것을 바라지 않고 작은 것을 좋아하게 돼.
이상과는 다른 현실에서 느끼는 괴리 때문일까? 이제는 꿈조차 꿀 수 없게 되었지. 예를 들어 내가 지금 대통령이 될 거라고 해봐.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를걸? 어른이 될수록 어린 시절보다 현실적으로 사고하게 되고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게 되지.
그런데 어른들은 왜, 어린 시절의 우리들에게 큰 꿈을 꾸라고 한 것일까? 어른들은 가끔 스스로도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곤 하는데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오히려 작은 것을 좋아하는 작은 사람이 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우리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과 잘난 사람으로서 살기를 바라는 바람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아. 그것들이 실제로 얼마나 큰 행복을 안겨줄지는 의문이거든. 그런 행복을 누려본 적이 없는 만큼 크게 기대하지도 않아.
큰 풍경_ 봉황교 위에서 내려다 본 해반천
봉황교 위를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중간 쯤 가서 해반천을 향해 시선을 던진 채로 머물러보세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자연물들이 그곳에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봉황교 위에서 머무르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유를 즐기는 모습들을 보고서 자신은 어떤 방법으로 봉황동을 여행하고 싶은지 생각해봅시다.
사람은 정말 대단한 존재인 것 같아. 실은 아주 작은 존재인데 크게 살아간단 말이지. 마을을 여행할 일이 있으면 어디 높은 곳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래? 눈앞에 펼쳐진 존재들이 하나같이 작게 보이지. 사람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렇게 작게 보이는 사람이 큰 집을 짓고 큰 목표를 세우다니... 심지어 누리호도 발사했잖아? 그런 점에서는 정말 대단한 존재인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너는 저기 저... 오리 친구들이 보이니? (네게 보낸 그림을 살펴볼래?) 너무 천천히 움직여서 제자리에서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는 오리들의 모습을 보렴. 어떨 때 보면 저런 작은 친구들이 더 부러울 때가 있어.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머리를 부여잡을 일은 없을 테니...
부럽다! 그저 떠다니다가 가끔 날아오르는 오리들의 삶이란. 물론 오리들도 하나의 생명으로 났기 때문에 나름대로 크고 작은 고통을 떠안고 살아야 할 테지. 그래도 오리처럼 큰 목표를 이루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푸념이 길었지? 미안해. 직장 생활에 너무 치여서 그래. 너는 요즘 어떻니? 퇴사하고 여행이나 가고 싶다^_^ 이런 생각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을 거야. 그만큼 피곤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현재를 벗어나는 것 이외의 대안이 부족한 탓이겠지.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찾아보자.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서 작은 것부터 좋아해보는 거야.
작은 것들을 좋아하는 너에게
귀여움 이상의 의미가 깃든 오리 그림을 보낸다.
물론 그림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로 만나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
봉황동에는 오리 외에도 아름다움을 간직한 작은 존재들이 많아.
마주치고 싶거든 마을 곳곳을 머무르듯 천천히 여행해보길 바랄게.
봉황동을 여행할 일이 생기면 연락해.
머무르기 좋은 카페나 맛집 추천해줄게.
그럼 또 편지할게. 안녕!
2022. 6. 22.
p. s.
작은 것을 아름답게 보기 위해서는
속도를 늦춰야하고, 가까이 가야한다는 점
기억하길 바랄게.
작은 풍경_ 흰뺨검둥오리
봉황교 위에서 머무르며 바라봤던 존재 중에서는 흰뺨검둥오리가 가장 유유히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어요. 직장 생활 때문에 스트레스 쌓이는 삶을 떠올리면... 오리들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군요.
제가 진행한 아트워크의 주제는 크고 작은 풍경으로 들려주는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기술인 머무름에 관한 이야기를 크고 작은 풍경이 한 묶음인 그림을 통해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종이상점을 중심으로 김해 봉황동의 풍경을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큐레이션 방식 : 수취인 분명의 편지
지금 보내드리는 이 편지는 제 그림을 전시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수취인 분명'. 말 그대로 받는 사람이 분명하다는 뜻인데요. 콘텐츠 채널이 다양한 시대에 제 이야기를 얼마나 많은 분께서 관심있게 봐 주실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메일의 상단에 적힌 수취인에 해당하는 분들만큼이라도 공감하며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었습니다.